인비노 컴온센스 일반와인상식 [손현주의 발칙한 와인] ‘와인은 감성’웃고 즐겨라
2013-03-18 21:22:23
인비노 <> 조회수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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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네콩티 주세요.”

늦은 저녁, 서래마을 와인 바. 소믈리에는 당황했다. 와인 바를 오픈한 이래 로마네콩티를 처음 주문받아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없었다. 로마네콩티를 덜컥 들여놓지 못하는 것은 최근 빈티지(생산연도)가 한 병에 500만원대 하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라타쉐, 에세조, 생비방 등 로마네콩티가(家)의 ‘세트품목’ 11종류를 한꺼번에 구입해야 한 병을 주기 때문이다. 당연히 구입자는 부담될 수밖에 없다. 해당 와인을 들여놓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하며, 조심스럽게 같은 부르고뉴 지역 옆 밭 와인을 추천해주자 손님은 대뜸 보르도 최고급 와인을 찾았다. 그렇다면 로마네콩티만의 특별한 유전자를 찾는 것이 아니고 단지 허영과 돈을 마시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포므롤과 생테밀리옹 와인 몇 병을 비워 일주일치 매상을 올려주고 갔다. 물론 나중에야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재벌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래도 애호가의 입장에서 마음은 씁쓸하더라고 전했다.

어제 끝난 국제주류박람회에서 남프랑스 와인을 들고 참석한 랑그독루시옹지방청 무역공사 대표 프랑수아 푸리(41)는 국내 몇몇 백화점을 둘러보고 당황했다. 프랑스에서조차 찾을 수 없는 유명와인들이 좍 깔려 있더라며 한국시장을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이날 전시장에서 만난 나라식품 이희상 회장 또한 “와인은 쉽고 편안해야 한다”며 고급스럽게 포장되어 있는 국내 와인문화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와인=고급문화’ 그릇된 국내 인식와인을 즐긴다는 것, 그것은 세계 각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 한 병 속에는 문화와 음식, 토양, 역사가 녹아 있고 그 와인을 만드는 인간의 열정까지 고스란히 잠자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와이너리 오너를 만나왔지만 늘 느끼는 것은 몇몇을 제외하곤 그들은 사업가이기에 앞서 소박한 농부라는 점이다. 짧게 자른 손톱 밑에는 묵은 때가 끼어 있고 햇볕에 그을려 주근깨와 기미가 자글자글하다. 가방과 벨트는 낡아 있다. 그들을 인솔하는 대사관 직원은 5000원짜리 커피 한잔에 벌벌 떠는, 인색하리만큼 검소한 모습에 혀를 내두르기도 한다. 쌈짓돈이 아까운 그저 평범한 이웃일 뿐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는 아니다. 지난 화요일 포르투갈 프리미엄 와인 도우로 보이즈(Douro Boys)에게 “왜 보이즈냐”는 질문을 했더니 “우린 5개 와이너리 연합인데 어떤 자리던 청바지만 입고 다녔다. 그랬더니 한 미국기자가 보이즈라고 불러줬다”며 털털한 일상이 결국 와이너리 연합의 이름이 되었음을 이야기해 줬다.

와이너리 오너도 소박한 농부일 뿐또 얼마전 샹파뉴 지방에서 다섯개의 샴페인 오너들이 다녀갔다. 대략 연간 4만~8만병을 생산하는 소소한 곳이다. 삼삼오오 모여앉아 음식과 샴페인에 얽힌 이야기를 나눴다. 마침 앞자리에 앉았던 마티유 프랑세의 매니저 프랑수아즈 마티유 프랑세와 긴 시간을 함께했다. 칠순은 넘어 보이는 멋쟁이 할머니였는데 그녀는 자기네 샴페인이 16유로이며 아주 열심히 만들었고, 맛이 참 좋은데 너무 비싸서 수입을 권하기 미안하다고 했다. 아울러 “난 음식을 매우 잘하며 내 오래된 음식과 내가 만든 샴페인을 곁들여 맛보여 주고 싶다”며 “꼭 프랑스로 초대하고 싶다”고 진솔하게 말을 건넸다. 자기에게는 인생이 그다지 많이 남지 않았음을 안타까워하며 이른 시간 내에 샹파뉴에서 만나기를 원했던 그녀. 가슴이 울컥 젖어왔다.

그래, 와인은 ‘감성’이다. 낮은 알코올 속에 사람의 순순한 맘이 묻어나고, 녹록한 대화가 젖어들며, 알큰하게 상기되지만 결코 취하지 않는, 취하면 곤란한 술이지 않은가. 한 병에 5000원짜리 와인이어도 자리가 아름답다면 그 맛과 가치는 500만원짜리 로마네콩티와 뭐가 다를까. 그러고 보면 우수하고 열등한 와인은 없다. 하늘의 별만큼 많은 와인마다 맛의 특성이 다르고 즐거움을 선사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그 다양성을 즐기는 것이 와인을 만나는 기쁨 중 하나다.

쉽고 편한 즐거움, 와인의 본질영국의 저명한 와인 평론가 잰시스 로빈슨은 ‘와인이 주는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와인의 핵심은 즐거움을 주는 것입니다. 그것도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즐거움을 주는 것이지요. 와인을 이해하고 즐기는 것이 아주 특별한 엘리트들만이 할 수 있고, 또 그들에게만 어울리는 다루기 힘든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경멸받아 마땅합니다. 강조해서 말하지만 와인을 지나치게 심각한 그 무엇이라 여겨서는 안됩니다.”

출저:스포츠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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